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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조씨 항렬표 (漢陽 趙氏) 역사, 종문, 병참공파 엠블럼, 충무공파, 양경공파 돌림자

by sk1st 꽃 나무 별 2024. 4. 11.

목차

    한양 조 씨 항렬표 (漢陽 趙氏) 역사, 종문, 병참공파 엠블럼, 충무공파, 양경공파 돌림자

    한양 조 씨(趙氏)는 그 뿌리가 깊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씨 중 하나입니다. 조 씨 성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한국에서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양 조 씨는 그 기원과 계보가 복잡하며, 다양한 가계와 역사적 배경을 가진 매우 흥미로운 성씨입니다. 이들의 계보는 조선시대의 뿌리를 갖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의미와 영향력이 큰 성씨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양 조 씨의 역사를 개괄하고, 그들의 표준 항렬표에 대해 설명하여 조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왼쪽 한양조씨 종문, 오른쪽은 한양조씨 병참공파 종회 , 대종회 앰블럼.

    한양 조 씨의 역사적 배경

    한양 조 씨는 그 기원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조 조지수의 독자인 조휘는 몽골 제국에 투항하여 여몽전쟁 중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그의 후손들이 쌍성총관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총관직을 세습하였습니다. 조휘의 후손 중 조돈은 고려 말기에 쌍성총관부의 멸망 후 고려에 귀순하여 공민왕 때 큰 공을 세우고, 그의 후손들은 조선 건국 후 한성을 중심으로 세거 하였습니다.

    한양 조 씨의 다양한 계열과 그 기원

    한양 조 씨는 조휘 계열, 조영무 계열, 조논걸 계열, 그리고 조방보 계열로 나뉩니다. 이들 모두는 조순대부 조지수를 공통의 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조지수는 첨의중서사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후손들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조휘 계열: 조휘 계열은 조지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한 이론이 명확하지 않으나, 1524년 발간된 족보에 따르면 조지수의 조상은 함경남도 문천시 원래의 용진현에 세거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그 외 계열: 조영무, 조논걸, 조방보 계열은 원래 다른 본관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한양으로 본관을 옮기고 조지수의 후손임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열 간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은 한양 조 씨 내부에서도 다양한 가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한양 조 씨가 한국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항렬표는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한양 조씨 항렬표, 돌림자

    조지수 계열 계파

    4세 5세 6세 7세
    용성군
    조돈(趙暾)
    양렬공계
    조인벽(趙仁璧)
    양절공파
    조온(趙溫)
    한풍군파
    조완(趙琓)
    도제공파
    조하(趙河)
    참판공파
    조흥(趙興)
    고사공파
    조육(趙育)
    [15]
    양경공파
    조연(趙涓)
    총제공파
    조모(趙慕)
    돈녕공파
    조자(趙慈)
    공안공파
    조혜(趙惠)
    병참공파
    조련(趙憐)
    가천재공파
    조사(趙師)
    현령공파
    조맹발(趙孟發)
    현감공파
    조중발(趙仲發)
    검한성공계
    조인규(趙仁珪)
    부사공파
    조순(趙純)
    사정공파
    조근(趙瑾)
    충정공계
    조인옥(趙仁沃)
    절효공파
    조뢰(趙賚)
    파서공파
    조순생(趙順生)
    봉례공파
    조관생(趙觀生)
    사직공파
    조효생(趙孝生)
    정랑공파
    조덕생(趙德生)
    참의공파
    조재(趙䝴)
    호의공파
    조욱생(趙旭生)
    사평공파
    조갱(趙賡)
    현감공파
    조서(趙瑞)
    판사공파
    조관(趙貫)
    참의공파
    조숙생(趙肅生)
    대호군공파
    조충서(趙冲諝)

    조지수 계열 한양 조 씨 항렬표

      대동 항렬 주실 조씨 항렬
    22세 가운데 종(鍾) / 재(載) 가운데 병(秉)
    23세 원(元) / 윤(允) 용(容)
    24세 가운데 병(炳) / 병(昺) 기(基)
    25세 행(行) / 형(衡) 석(錫) / 호(鎬)
    26세 가운데 성(誠) / 성(成) 영(泳) / 수(洙) / 해(海)
    27세 희(熙) / 기(紀) 동(東) / 식(植)
    28세 가운데 경(慶) / 용(庸) 렬(烈) / 섭(燮) / 휴(烋)
    29세 신(新) / 장(章) 균(均) / 재(在) / 배(培)
    30세 가운데 정(廷) / 성(聖) 현(鉉) / 옥(鈺) / 종(鐘)
    31세 규(葵) / 규(揆) 심(瀋) / 태(泰) / 홍(泓)
    32세 가운데 학(學) / 존(存) / 후(厚)  
    33세 서(書) / 숙(肅) / 용(用)
    34세 가운데 연(演) / 인(寅) / 황(璜)
    35세 경(卿) / 소(邵) / 영(迎)
    36세 가운데 진(震) / 진(振) / 양(養)
    37세 범(範) / 룡(龍) / 기(夔)
    38세 가운데 년(年) / 남(南) / 준(準)
    39세 동(東) / 수(洙) / 래(來)
    40세 가운데 중(重) / 련(連) / 창(暢)
    41세 필(弼) / 존(尊) / 유(猷)
    42세 가운데 기(璣) / 의(義) / 무(武)
    43세 하(夏) / 원(遠) / 준(俊)

    항렬표는 가계를 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명단으로, 각 세대별로 특정한 이름의 한자를 사용하여 가문의 계승을 나타냅니다. 한양 조 씨의 경우, 22세부터 43세까지의 항렬 이름이 정해져 있으며, 이는 각 세대가 지켜야 할 덕목과 가문의 전통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22세의 '종(鍾)'은 '귀하게 여기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가문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반면, 32세의 '학(學)'은 '배움'을 뜻하며, 지속적인 교육과 성장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각 이름에는 그 세대가 유념해야 할 가치와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조영무 계열 계파

    한양 조씨의조 씨의 역사는 단순히 시조 조지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조지수의 후손임을 주장하나 계보 고증이 불가한 계파도 존재합니다. 특히 조영무(趙英武)는 조선 초기의 중요 인물로, 그의 삶과 그에 따른 본관 변경은 한양 조 씨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5세 6세 7세
    충무공
    조영무(趙英武)
    남원공파
    조전(趙琠)
    자평공파
    조완규(趙完珪)
    판관공파
    조완주(趙完珠)
    참판공파
    조윤(趙倫)
    월계당파
    조종경(趙宗敬)
    백당공파
    조수경(趙守敬)
    세마공파
    조이경(趙以敬)

    조영무의 배경과 본관 변경

    조영무는 원래 영흥 조 씨(永興 趙氏)였으나, 그의 가문은 조선 건국 초기의 여러 정변을 거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조영무 자신도 번상군 출신으로 공신이 되어 한산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조선의 초기 관례에 따라, 그는 봉지인 한산(漢山)에 따라 본관을 한양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공신들에게 주어진 특권 중 하나로, 본관을 봉지에 따라 변경하는 것은 그들의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중요한 행위였습니다.

    조영무 한양조 씨 항렬표

    • 조영무를 5세로 한다.
     
    21세
    가운데
    천(天)
    22세
    선(善)
    23세
    가운데
    태(泰)
    24세
    동(東)
    25세
    가운데
    용(容)
    26세
    원(遠)
    27세
    가운데
    종(鍾)
    28세
    한(漢)
    29세
    가운데
    수(秀)
    30세
    희(熙)
    31세
    가운데
    규(圭)
    32세
    현(鉉)
    33세
    가운데
    영(泳)
    34세
    식(植)
    35세
    가운데
    병(炳)
    36세
    교(敎)
    37세
    가운데
    석(錫)
    38세
    순(淳)
    39세
    가운데
    춘(椿)
    40세
    욱(煜)

    조영무의 계보와 조선왕조실록 기록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영무의 졸기(卒記)에는 그의 아버지의 함자와 본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당시 문서가 불완전하거나 일부 기록이 유실된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영무의 가계는 조지수에서 시작하여 인재, 순후, 세진을 거쳐 영무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으나, 해당 가문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 근거가 부실합니다.

    조영무의 본관 변경과 그의 계보는 한양 조 씨가 어떻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한양 조 씨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영무와 같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으며, 한양 조 씨의 역사적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양 조 씨의 인구 규모

    한양 조씨의 현재 인구는 약 3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호적상으로 한양 조 씨로 등록된 사람들의 수로, 실제로 조돈의 후손이 아닌 경우도 포함된 수치입니다. 한양조 씨 정통대종회에서 편찬한 족보에 따르면, 조지수 이후의 모든 후손을 포함한 족보에는 167,676명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양 조 씨가 한국 내에서도 매우 큰 성씨 중 하나임을 나타냅니다.

    한양 조 씨는 그 역사적 배경과 계열의 다양성에서 볼 때, 한국 성씨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각 계열이 가진 독특한 역사와 그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해 내려오는 가치와 전통은 한양 조 씨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러한 깊은 역사적 배경과 현대에 이른 인구의 규모는 한양 조 씨가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론

    한양 조 씨의 역사와 항렬표는 단순한 가계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성씨가 시대를 거치며 이룬 역사의 흔적과 함께, 미래 세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양 조 씨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이해하고, 조상들의 삶과 가치를 존중하며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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